교회 일은 언제나 세상 일에 우선해야 하는가? Publish on December 15,2014 | 홍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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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이 생각이 난다.
필자의 부친은 당시 시골교회를 맡아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에 교인의 남편이 아버지를 찾아왔다. 아버지를 찾는 목소리를 들으니 술이 거나하게 취한 상태였다. 보통의
경우이면 아버지는 찾아오는 손님을 서재로 모셔서 함께 대화를 나누실 텐데 그날은 “선생님. 술에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술이 깨신 후에 낮에 찾아오시죠”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남자분은 꼭 따져야 할 것이 있다며 꼭 얘기를 해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아버지는 그분을 서재로 들어오게 해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셨다. 그 남자분이 따진 내용은 한 마디로 하면 자기 부인이 집안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교회에만 와서 산다는 것이다. 목사가 교회에서 어떻게 교육을 시켰기에 자기 부인이 그렇게 행동하느냐는 것이다.
교회 일과 집안 일 혹은 하나님의 일과 세상 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며 양자간에 어떤 우선순위를 정해주어야 하는지는 모든 신앙인들이 고민하는 문제이다. 어떤 사람은 단순하게 생각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세상 일은 육적인 일이고 교회 일은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세상 일에 앞서서 교회의 일을 먼저 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런 입장에 선 사람은 가정 일이 밀렸어도 회사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어도 교회에서 필요하다면 만사 제치고 먼저 교회 일을 처리하러 갈 것이다.
반면에 다른 사람은 그렇게 겉으로 보이는 형태를 가지고 이것은 영적인 일이고 저것은 육적인 일이라고 구분하는 것은 성서적이지 않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면을 보시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아무리 교회 일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어떤 인간적인 목적을 위해 일을 한다면 그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닌 것이다. 겉으로는 영적인 일이지만 실제 내용은 육적인 일인 것이다. 또 같은 논리로 세상 일을 하는 이유가 어떤 인간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하나님의 일, 영적인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따라서 이런 입장에 있는 사람은 세상 일과 교회 일이라는 외형적인 모습만을 가지고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을 결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세상 일과 교회 일이 충돌을 일으킬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영적인 일인 교회 일을 먼저 해야 할까?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모든 일은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어떤 다른 우선순위의 기준을 생각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세상 일이든 교회 일이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일은 동일하게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특정 시점에서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하나님이 가장 크게 영광을 받으실까를 생각하면서 우선순위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세상 일과 교회 일을 각각 육적 혹은 영적인 일로 구분하는 사고방식은 물질을 악하게 보고 영을 선하게 보는 고전적인 이원론에 기인한다. 신약성경이 기록되던 당시 신플라톤주의 철학자들은 육체가 없는 신(神)의 상태를 최고의 영성의 단계로 그리고 육체에 지배당하는 상태를 가장 낮은 단계로 보았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구원은 영혼이 육체를 탈출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육체를 지니고 사는 동안에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영성의 단계는 육체의 성질을 죽이는 금욕주의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금욕주의가 지나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육체 자체가 악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결혼까지도 금하게 된다. 왜냐하면 결혼은 본질적으로 악한 육신을 재생산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이런 이원론은 반대 극단으로 치우쳐서 방종주의로 흐르기도 하였다. 어차피 육신은 본질적으로 악한 것이기에 절대 구원받지 못할 것이고 오로지 선한 영혼만 구원받게 될 테니까 육신은 아무리 잘 관리해보았자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육신은 어떻든지 상관없이 영혼만 잘 관리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영혼과 육신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서로 상극의 관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마찬가지로 육신도 하나님의 선한 창조로 본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빛을 만드시고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그 안에 들어가는 동식물들을 만드시고 매번 “보시기에 좋았다”고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담과 이브를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에서는 물질/육체는 악한 것이 아니라 영과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선한 것이다.
교회 일과 세상 일을 본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더 나아가 적대적인 관계로 보는 시도는 16세기 종교개혁의 만인사제설로 인해 무너졌다. 만인사제설은 개신교 종교개혁을 시작한 마틴루터가 새로이 강조한 것으로 글자 그대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성직자라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기로는 성직자로 세움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고 성직자가 교회 안에서 행하는 일만이 거룩한 일이고 또 그런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통해서만 사람이 하나님께 직접 연결되고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주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그런 특권을 부여받은 것이다. 베드로전서 2:9절이 이 사실을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운명하실 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는데, 이것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방법, 즉 반드시 성직자를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방법이 폐지되고, 이제는 누구나 예수를 영접하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총으로 직접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진리를 확인해주는 사건인 것이다. 히브리서 10:19-20절이 이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은 성직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한다. 성직자는 전문적인 교회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는 부름을 받은 것이고 평신도는 세상의 직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는 부름을 받은 것이다. 세상 직업도 역시 하나님의 소명(召命)이라는 개념은 영어의 Vocation(독일어로는 Beruf)이라는 단어에 집약되어 있다. 이 단어는 직업으로도 번역되고 소명으로도 번역되는 되는 단어이다. 세상 직업/일도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절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다. 성직자는 평신도들이 빛과 소금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주는 사람이고, 실제로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은 평신도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져야 하는 장소는 교회가 아니라 각자의 직장과 학교와 가정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교회 일이든 세상 일이든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소명이고 우리는 그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이라면, 교회 일을 먼저 할 것인가 세상 일을 먼저 할 것인가는 그때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교회 일인가 세상 일인가 그 자체가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기준이 아니라 이 시점에서 어떤 것을 먼저하고 그것을 어떻게 수행하는 것이 가장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인가가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