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5월 8일 2023년
Publish on May 11,2023Office
네덜란드 철학자인 요한 호이징아는 노동과 놀이의 차이를 이렇게 규정한 바 있습니다. 행함에 있어 수단과 목적이 일치하면 ‘놀이‘이고, 반대로 일치하지 않을 때 ‘노동’이라고 말입니다. 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혼자 공부하며 즐거워 한다면 그건 ‘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이‘로 공부하는 아이에게 과제를 내 주면서 결과에 따라 응당한 보상과 대가가 따를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공부는 더이상 놀이가 아니라 노동으로 바뀌게 됩니다. 공부는 이제 보상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고, 공부가 아닌 보상이나 대가가 목적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때부터 그에게 공부는 더이상 제맘대로 즐기는 놀이의 대상이 되기 어렵습니다. ‘놀이’는 하기 싫으면 그만이지만, ‘노동‘은 재미없다고 해서 마냥 그만둘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세상을 살면서 놀이로서의 삶을 지향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으로서의 삶을 영위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반드시 어느 쪽이 옳은 선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은근히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영화의 제목 같기도 한 말인데,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라는 표어는 특히 현대인들에게 특정한 삶의 지향점을 제시해 준 일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 안에는 한가지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해도 좋다는 일종의 회유입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내일의 진학을 위해 오늘을 희생합니다. 다 그런건 아니지만, 적어도 놀이처럼 공부하는 사람이 아닌 한 대부분은 진학이라는 목적을 위해 재미없는 노동을 오늘 감내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계속 반복되다 보면,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또 희생해야 하는 불행을 늘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일은 내일 맞이하게 될 또다른 오늘이기 때문이지요.이와는 달리 ‘내일은 없다‘는 심정으로 사는 사람은 오늘의 행복을 내일에 결코 양보하지 않는 삶을 살 가능성이 큽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과는 늘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셈이 됩니다. 내일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오늘 하루를 노동으로 일관하는 삶이 아니라, 오늘 자체를 즐기며 놀이하듯 산 결과입니다. 예수님도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계획없는 마구잡이 삶을 부추긴 것이 아니라, 오늘을 즐기며 사는 삶을 통해 진정한 행복의 길을 발견하라는 권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건, 오늘을 그 자체로 누리며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하루를 향유하며 사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부활의 기쁨입니다. 그러니 내일로 미루지 마시고 오늘 믿음대로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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