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3월 20일 2023년 Publish on March 23,2023 | 관리자
페이지 정보

본문
지난 해 소천한 이어령 박사의 저서 중에 “생명이 자본이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중에 “양에게 이름을 붙이고 만 소년”이라는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한 공장에서 식용으로 출하할 양을 기르다가 정이 들어 버린 소년이 양에게 이름을 붙여 준 에피소드입니다. 저자는 소년이 양에게 이름을 붙여준 순간 그 양은 더이상 식용 가축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소년의 친구가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를 사랑하는 것(love)과 좋아하는 것(like)의 차이라고 이어령 박사는 규정합니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양을 먹는 것은 좋아하는 것이지 사랑하는 행위와는 구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양이가 쥐를 좋아하는 것은 잡아 먹기 위한 라이크의 감정이지 사랑 때문이 아닙니다. 이 때 좋아하는 감정을 사랑의 행위와 구분시켜 주는 것이 소유의 욕구입니다. 잡아 먹는 건 자기를 충족하기 위한 일종의 소유 욕구에서 비롯된 행위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소년처럼 잡아 먹을 양에게 이름을 붙여주게 되면 오히려 자기 먹을 것조차 나누어 주고 싶은 감정이 발생합니다. 식용이 아니라 사랑 “애(愛)”자가 붙은 ‘애완용’ 펫 (pet)이 된 결과입니다. 일방적으로 나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소유의 수단이 아니라, 아껴주며 생명의 교감을 나누는 사랑의 대상으로 전환이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을 그가 가진 배경과 재산 혹은 명예를 보고좋아한다면 그건 라이크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한 상태입니다. 결코 사랑의 감정에 이르지 못한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가진 것 하나 없고, 내게 돌아오는 어떤 대가도 없는데 마음이 움직인다면, 그 때 사랑의 증세를 의심해 봐도 좋습니다. 일단 사랑앓이가 시작되면, 상대방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아니라 내 것 조차 나누어 주고 싶은 이상한 마음이 생겨납니다. 본능적으로는 자연스러운 소유에 대한 집착을 오히려 내려놓는 중증 현상이 발현하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 자기 소유를 내려놓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오르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제자의 길을 가는 것은 엄격한 규율과 원칙을 통과한 소수의 강성 신앙인을 위한 등용문이 아닙니다. 가까운 혈육 조차도 매몰차게 내칠 만큼 지독한 신념에 사로잡힌 맹목적 순종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사랑이 없으면 그딴 건 다 소용없는 짓일 뿐입니다. 오직 신념 하나만 붙들고 무소의 뿔처럼 가려 했던 이들 중에는 히틀러와 같은 무자비한 독재자들이 수두룩합니다. 예수님이 요청한 제자의 길도 신념과 그에 걸맞는 강직한 실천에 무게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 건 다 라이크의 감정에서 나오는 것일 뿐입니다. 모든 것을 욕망하는 라이크의 감정을 누르고 생명을 향한 애틋한 사랑을 품을 때, 진정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길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