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표어 우리는 세상의 등불

조회 수 5082 추천 수 0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은혜로운 글 하나를 소개합니다.  

 

동기부여(動機附輿)

1931년생이니 금년에 팔십 이세가 되는 할아버지다. 이 노인이 일주일에 사흘, 월 수 금요일이 되면 거리로 나선다. 지하철역 인근이나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 구청의 구민행정을 알리는 전단지를 나누어주기 위해서다. 열두시에서 세 시까지만 하는 일인데, 구청 복지과에서는 매월 이 십 만원을 통장에 입금시킨다.

 

왕년에 금송아지 한 마리 없었던 사람 있냐는 말이 회자되기도 하지만, 이 할아버지도 작은 규모의 자기 회사를 알차게 운영하던 분이다. 분가해서 살고 있는 자식들도 제 몫을 하고 있고, 마나님과 둘이 강남의 넓은 거처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누구의 눈에도 추운 날씨에 거리에서 전단지를 돌릴 정도로 월 이 십 만원이 목마른 처지는 아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에 아주 행복하다.

 

와이셔츠도 손수 다림질하고, 바지의 줄도 칼날 같이 세운다. 당신의 이 일을 마땅치 않게 여기는 안노인의 수고를 빌리지 않으려는 것이다. 거리에서 하는 일이니 두툼한 쉐터에 털잠바가 마땅하다. 사실  할아버지가 속한 팀의 삼 십 여명은 모두 그렇게 따뜻하고 편한 옷을 입고 나온다. 제일 연장자인 할아버지만 의관을 정제하고 전단지를 나눈다. 젊은 시절 직장에 출근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차림이다.

 

이 일을 한지는 석 달이 된다. 사실 이런 일이 있는지도 몰랐다. 석 달 전이었다. 할아버지가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새 생명 축제 대회(전도대회)를 앞두고 성도들을 크게 독려할 때이다. 할아버지는 교회 행사에 적극 협조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든 전도 대상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아서 인도하려고 작심하였다.  전도는 기독교 신자라면 마땅히 해야할 지상 최고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이 교회에 출석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십 년 가까이 경기도 벽촌의 한 개척교회를 섬겼는데 집에서 왕복 다섯 시간이 더 걸리는 먼 곳이라 작년에 그만 두고, 아내가 다니는 가까운 교회로 적을 옮겼다. 그래서 이 교회에 아무 공로가 없다는 생각으로 늘 빚진 자 같은 마음이 들었다. 고령자이니 봉사할 부서도 없다. 오히려 젊은 성도들의 부축을 받게 되어 짐이 되는 듯한 자괴감 때문에 주일 예배를 더러 거르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전도대회가 열리고 온 성도들에게 전도의 의무가 주어지니 할아버지는 당신에게도 할 일이 생긴 것이 기뻤다. 늙었다고 전도까지 못하랴. 그래서 무작정 들린 곳이 동(洞)에서 운영하는 노인정이었다. 당신과 연배가 같은 사람들이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공통의 문제에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노인정에는 할아버지의 눈에 젊은(?)이들이 꽤 있었다. 육 십대, 칠 십 대의 젊은 노인들이다. 할아버지는 이들에게 다가갔다.. 보신탕도 사주고, 싱싱한 생선회도 대접했다. 그러면서 친분을 쌓았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이면 함께 모여 나갔다가 몇 시간 뒤에 돌아와서 화투도 치고, 노인정에 비치된 기구를 가지고 운동도 하는 것이 아닌가. 동행을 자청해 보았다.

 

따라가 보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반장이 구청에서 전단지를 받아오면 배당된 지역으로 흩어져서,   행인들에게 구청의 홍보지를 나누어주는 일이었다. 고령인구가 많아지니 국가에서 그들에게 작은 일거리를 만들어 주고 용돈이라도 쥐어 주려는, 말하자면 노인복지정책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그 날로 할아버지도 신청서류를 작성하고 회원 가입을 하였다.

 

자초지종, 일의 전후사정을 들은 마나님이 펄쩍 뛰었다. 무릎이 시원치 않은 영감님의 건강도 걱정이 되었지만, 사람의 왕래가 많은 번화한 사거리에서 필경 알만한 이를 만나게 될 터인데, 체면이 어떻게 되겠냐고 만류하는 것이다. “아무개가 다 늙어, 길에서 전단지를 돌리고 있더라”라는 입 소문이 날 것은 뻔한 일이고, 종당에는 자식들의 입장이 난처 해 질텐데, 조용히 집안에 있으라고, “노망이 드셨소?” 망령든 노인 취급을 하였다.

 

“여보, 말리지 말아요. 나는 얼마나 신이 나는지 모른다오. 당신도 내가 운동부족이라고 늘 말하지 않았소? 일주일에 세 번, 세시간을 서서 움직이니 운동이 되어 좋고, 구청에서 하는 일을 알리는 일이니 구민으로서 내가 구정(區政)에 참여하는 일이 되고, 거기다 월 20만원, 전도비용까지 생기니 이렇게 기쁜 일이 어디 있소? ” 이렇게 말하며 할아버지는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노처(老妻)가 부리 낳게 안으로 들어가서 선글라스를 들고 나와. “이거라도 쓰시구려. 그리고 돈도 번다니 뜨끈하게 도가니탕이라도 사서 들고...” 하면서 건넸다.

“그러지 마요, 어제는 후배를 만났는데 내가 먼저 인사를 했소, 그리고 한 푼이라도 내가 쓸 마음이라면 이 일을 할 수가 없다오” 정색을 하고 말을 하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거리에 나섰던 첫 주에 새 신자 한 명을 등록 시켰고, 그 다음 주에도 조금은 젊은이를 대동하고 자랑스럽게 예배를 드렸다. 새 생명 축제가 열리던 날, 할아버지는 세 명을 인도하고 그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보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남편의 그 모습은 하던 일을 접고 집에 들어앉은 지 삼 년 동안 한번도 볼 수 없었던 활기차고, 당당하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 하고 있는 일에 확실한 이유를 갖는 것, 건강한 동기부여가 만드는 아름다움을 보며, 아내인 나는 내 인생의 수확이 부실했던 이유를 비로소 찾아내었다. 그리고  일흔 일곱 살 이 나이에도 내가 직면한 일에 어떤 동기부여를 하느냐에 따라 활기차고, 당당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소망 한 자락을 품게 되었다.

  • ?
    송 선영 2012.04.18 13:58
    정말 아름답고 은혜로운 이야기 입니다. 감명 기픈 소리는 "늙었다고 전도 못하랴" 의 말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 늙은 모양을 내며 앉아서 대접만 받으려 합니다. 늙은 나이에 새로히 전도한 세 새신자를 보살피니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 "자신이 고령자로 불리며 봉사할 부서가 없었다", "전도는 온 성도에게 주어진
    의무", "할일이 생겼다" 등의 글들이 인상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