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삼열 목사의 목양칼럼
사진앨범 :: 아름다운 순간들!
2016.07.31 19:05

의심은 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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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가지는 이유 중 하나가 기독교는 모든 종류의 의심을 정죄하고 무조건 교회의 가르침을 믿으라고 강요한다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따져서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거고 믿음이 없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일종의 억압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교회에 다니는 기존 신자들 중에서도 역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이런 저런 불이익의 위험성을 고려하여 그런 생각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의심이 정말 죄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마음속에 남는 것이 현실이다.

 

의심을 죄로 규정할 때 주로 사용하는 성경은 요한복음 20장에 나오는 도마의 이야기 부분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 자리에 마침 도마가 함께 있지 않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시면서 복음전파의 사명을 맡겨주셨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제자들은 도마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나타나셨다고 알려주는데 이때 도마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했을 때 특별히 놀라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단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자기가 직접 과학적 관찰을 하기 전에는 판단을 유보하겠다는 뜻이다.

 

이 일이 있은 지 일 주일이 지났다. 도마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방에 들어와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시 한 번 그들 앞에 나타나셨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께서는 도마를 책망하지 않으셨다. 믿음이 없다고, 의심은 나쁜 거라고, 절대 의심하지 말고 무조건 믿으라고 그를 다그치지 않으셨다. 대신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의 의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고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의심하는 도마에게 주신 말씀, 즉 부활한 몸을 직접 만져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에게 가능한 방법으로 사실 여부를 검증하고 의심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격려의 말씀인 것이다. 이에 도마는 예수님께서 진실로 부활하신 것을 확인하고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란 고백을 했고, 주님은 그에게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진리를 가르쳐주셨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신앙의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보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믿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의 세계에서는 경험적 증명이 가치가 없는 것일까? 신자는 의심하지 말고 무조건 믿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만일 그래야 한다면 우리는 이단에 대해서 무방비가 될 것이다. 신자는 교회의 가르침을 무조건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 가르침이 올바른 것인지 확인하는 건전한 종류의 의심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의심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이 아니라 신앙에 도움이 되는 의심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긍정적으로 보면 의심은 신앙생활에 필수적인 이성(理性)의 일부인 것이다.

 

사사기 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실 때의 장면이 나온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르셨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인지 아니면 어떤 사악한 귀신이 천사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 증명을 요구하였다. 그때 천사는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기드온이 준비한 제물에 대었는데 이때 불이 바위에서 나와서 그 제물을 다 태우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 다음 기드온이 미디안과 아말렉에 대항하여 전쟁하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을 때 재차 하나님께 증명을 요구하였다. 양털 한 뭉치를 마당에 둘 테니 다음날 새벽에 이슬이 양털에만 내리고 주변 땅은 바싹 마르게 해달라고 요구했는데 새벽에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 다음 날에 그는 다시 한번 증명을 요구했는데 이번에는 정반대로 주변 땅에는 이슬이 내리고 양털은 바짝 마르게 해달라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대로 응답해주셨다. 이로 보건대 의심이라고 다 나쁜 것이 아닌 것이다.

 

의심하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다. 사실 마음속에 의심이 없으면 발전이 없다. 사람의 마음속에 자연히 일어나는 의심의 사항들을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해결 받을 때 더욱 믿음이 튼튼해진다. 그러니 마음속에 의심이 생길 때 자신이 신앙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그 의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할 것을 권한다. 끝까지 진리를 찾는 자세를 가지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앙의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정기적으로 기도도 하고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의심의 문제들이 많이 해결될 것이다.

 

또한 우리 주변에 의심하는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을 정죄하기보다는 사랑으로 용납하는 자세를 가지기를 권한다. 예수님께서 의심하는 도마를 어떻게 대우하셨는가? 그를 무시하거나 책망하지 않으시고 사랑의 마음으로 그에게 다가가셨다. 사실 의심하는 도마에게 주님께서 다시 나타나셨다는 것은 그 자체로 도마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받아주셨다는 뜻이다. 받아주셨기에 다시 그에게 나타나셔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관심은 도마같이 의심하는 자를 제자그룹에서 몰아내서 순수한 믿음의 그룹을 유지하는 데 있지 않았다. 예수님의 관심은 그 의심하는 도마를 어떻게든 도와서 다시 믿음의 자리로 회복시키는 데 있었다. 따라서 우리도 현재 우리 주변에 의심하는 분들에 대해 비판이나 정죄의 태도보다는 사랑으로 용납해주는, 이해해주는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우리는 교회에서 약간이라도 의심의 말을 하면 믿음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는 것이 두려워 절대 그런 말도 안 하고 또 서로 간에도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데 이것은 사실 아주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의심이 있고 질문이 있어야 신앙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사실 마음속에 아무런 질문도 없고 결코 질문하는 법이 없는 학생이 공부 잘하고 나중에 큰일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질문이 많아야 많이 배우는 법이다. 기독교 신앙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좋은 의미에서의 의심이 필요하다. 따라서 의심을 두려워하지 말고 신앙의 시각을 가지고 계속 의심의 문제와 씨름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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