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삼열 목사의 목양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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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 주시는 내용이 나온다. 예수님 당시 거라사 지방은 주로 이방인들이 살던 지역이다. 마태는 이곳을 가다라로 부르고 마가와 누가는 이곳을 거라사로 부르고 있는데 우리는 이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곳이 갈릴리 호수에 맞닿아 있다는 것, 그리고 이곳이 갈릴리의 동쪽 도시인 데가볼리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데가볼리는 이방인의 10개 도시를 지칭하는 이름이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거라사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곳에 가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곳에 들어가실 때 도시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귀신 들린, 해안가 무덤 사이에 사는 한 사람을 만나셨다. 가끔 제정신이 들면 사람들이 와서 그에게 쇠고랑을 채워 놓지만 귀신이 다시 그를 지배하게 되면 쇠고랑을 끊어버리는 괴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너무나 난폭해서 아무도 제지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즉시 귀신들에게 그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셨다. 이때 귀신들은 자기들을 무저갱으로 보내지 말고 대신 돼지떼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고 예수님께 요청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자 그 귀신들은 2000여 마리의 돼지떼에게( 5:13) 들어가서 돼지들을 비탈길로 몰고 가서 일시에 모두 물에 빠져 죽게 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는 마음속에 질문이 생긴다. 왜 예수님은 악한 귀신들의 요청을 들어 주셨을까? 왜 불쌍한 돼지들을 죽게 내버려두셨을까? 학자들은 이에 대해 다양한 설명을 제시한다. 그 중 대표적인 두 가지를 들면 이렇다. 첫째는 아직 귀신들을 무저갱에서 멸망시킬 최후의 심판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 요청을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이런 동물들의 갑작스런 죽음을 통해 거라사인들에게 귀신의 파괴성을 알려주시고, 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귀신을 제어하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그들도 예수님을 믿도록 유도하기 위해 귀신들의 요청을 들어 주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이 이야기가 우리 마음속에 불러 일으키는 질문이 있다. 예수님은 돼지떼가 불쌍하지 않으셨을까? 더 나아가 그 돼지떼를 소유한 주인은 무슨 죄가 있기에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잃어야만 했을까? 이런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이 이야기는 당시의 사회문화적 가치를 배경으로 접근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같이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대에도 사람의 생명을 살리느냐 동물의 생명을 살리느냐 양자 택일의 상황에서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데, 옛날에는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이 없었다. 고대시대는 노예의 인권은 물론이고 여자와 아이들의 인권도 무시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동물의 권리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동물은 오로지 식량의 목적으로 그리고 사람의 편의의 목적으로만 존재하였다. 따라서 당시에는 요즘 같이 반려동물의 개념은 없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현대적 시각에서 이 이야기를 읽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복음서의 예수님이 한 영혼을 가장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중요성의 면에서 한 영혼과 온 천하를 비교한다면 예수님은 언제나 한 영혼을 선택하셨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초점은 죽은 돼지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생명을 얻은 그 영혼에게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정한 거라사에 오셔서(거라사는 이방지역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부정하다), 부정한 한 사람을 만나시고(귀신들린 상태에서 무덤 사이에 있는 것은 그 자체로 부정한 일이다), 그에게서 부정한 귀신들을 내어쫓으심으로써 그를 부정에서 해방시켜주시고 그에게 생명을 주신 것이다. 대신 그 귀신들은 자기들에게 맞는 장소인 부정한 돼지들(돼지는 유대인들에게 부정한 짐승이다)에게로 들어가서 그것들을 파멸로 몰아넣은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가 전달해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예수님은 2000마리의 돼지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온 천하보다 더 귀한 한 영혼을 살리셨다는 것이다.




목양 칼럼

홍삼열 담임목사의 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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