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삼열 목사의 목양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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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에베소서 1:3-5) 여기에 보면 엄청난 내용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미리 예정하셨는데, 언제 그렇게 하셨다고 하는가 하면 “창세 전에”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시기 전에,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시기 전에 구원받을 자를 미리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순종의 여부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정하신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이 예수를 믿지 않아도 무조건 구원받게 된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예정된 사람은 예수를 믿고 영접하는 것과 상관없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예수 안에서” 구원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위의 짧은 세 절 안에 “그리스도 안에서”가 두 번 나오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가 한 번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통해 구원받도록 예정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미 구원받기로 선택된 사람은 다 예정되어 있으니까 선한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자유의지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는 예정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를 가르치는 구절들도 많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요한복음 3:14-16절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누구든지--예외가 없다. 누구든지--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고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스스로의 자유의지를 통해 예수를 영접하지 않으면 절대 구원을 얻지 못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는 자유의지가 대단히 중요하다. 빌립보서 2:12절에 보면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였다. 구원받은 신자에게도 순종의 삶이 꼭 필요하다는 말이다. 뭐를 위해서?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구원을 칭의의 측면과 성화의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칭의는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의 은총을 믿을 때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변하는 것이다. 이것은 법적인 변화이다. 그리고 이렇게 법적 변화가 일어날 때 동시에 내적으로는 거듭남의 역사가 일어난다. 내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다. 한편 성화는 이렇게 새로 생명이 시작된 후에 점점 어른으로 자라가는 과정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해질 때까지 계속 자라가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닮아가는 과정, 이것이 성화의 과정이고, 여기에 우리의 의지적 노력이 필수적인 것이다.

 

빌립보서 2:12절의 “구원의 이루라.”는 의미가 바로 이 성화의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믿음으로는 부족하니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 믿고 새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면 당연히 성화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예수를 영접함으로 칭의의 차원의 구원을 받게 될 때 그것은 구원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예수 안에서 새 생명이 태어난 것이다. 이 구원이 더욱 풍성해지고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지적 순종이 필요하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완성하는 성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만일 칭의의 차원의 구원만 받고 의지적 순종의 삶을 살지 않으면 아마 천국에 가서 면류관을 받지 못하고 대신 “개털모자”를 받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한국에서 8-90년대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신 적이 있을 것이다. 경상도 어느 시골 산기슭에서 개를 200여 마리 키우던 계 장로님이라는 분이 계셨다고 한다. 당시 그분의 교회에서 예배당을 건축하게 되어서 교인들 모두가 작정 헌금을 하는데 계 장로님도 동참해야 했다. 장로님이 해 왔던 사업이라야 개 키우는 것 밖에 없으니 개를 팔아서 헌금을 해야 했다. 그런데 개를 키우느라고 이것 제하고 저것 제하다 보니 먹고 살기가 힘들다고 생각해서, 개 한 마리 값만 헌금하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이 작정 헌금을 본 담임목사님은 대단히 실망하셨다. 장로가 되어서 개 한 마리라니... 본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에 계 장로님이 꿈을 꾸었다. 천사의 인도를 따라 면류관이 진열된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 다양한 면류관에는 아름다운 보석이 박혀 있었다. 내 것은 금 면류관일까 은 면류관일까 생각하다가 천사에게 물었다. “어느 것이 저의 면류관입니까?” 천사의 대답이 “본인의 머리에 꼭 맞는 것이 자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하나 들어서 써 보는데 머리에 맞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내 머리에 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니까 천사가 저쪽에 있는 것들을 살펴보라고 했다. 천사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거기에는 개털모자들만 진열되어 있었다. “저것을 쓰라고요? 어떻게 그런 걸 씁니까?” 그래도 한 번 써보라는 천사의 말에 하나를 들어서 써 보니 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내가 명색이 장로인데 이것은 아니야!” 라고 소리치는데 꿈이 딱 깨었다는 것이다.

 

구원받아 천국에는 갔는데 개털모자라... 어떤 생각이 드는가이 세상에서 차별받고 사는 것도 분통 터지는데 천국에서도 그런 차별을 받아야 해? 이런 생각이 드는가? 물론 천국에는 차별이 없을 것이다. 정말 개털모자 같은 것은 없을 것이다. 계시록에 보면 구원받은 사람들이 자기 머리에 있는 면류관을 벗어서 주님의 보좌 앞에 다 던진다고 했는데, 그걸 보면 상급은 별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그런 부끄러운 구원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이다.

 

정말 성경에 기록된 그런 빛나는 면류관을 상으로 얻을 정도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정말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완성한다는 결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만일 자기는 구원받기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 막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산다면, 최상의 경우 천국에서 개털모자 수준의 구원을 받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 구원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과연 구원받은 사람이 나중에 타락하여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장로교와 감리교의 입장이 다르다. 장로교에서는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구원받는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믿기 때문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은 잠간 타락하여도 하나님께서 다시 강권적으로 은혜를 주셔서 돌아오게 하시고 천국에까지 이끌어 주신다고 믿는다. 한편 감리교에서는 구원의 은혜를 맛보고서 세상으로 돌아가서 타락한 사람은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이 둘 중의 어떤 경우에도 나 자신의 현실적인 차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내가 과거에 예수님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지만 이제는 방탕하게 살다가 죽어서 보니 지옥에 갔다고 할 때, 장로교식으로 설명하면 그 사람은 원래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다. 원래는 지옥 가기로 예정된 사람인데 그 동안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감리교식으로 말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총을 주셨는데 그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확실히 모른다는 것이다. 단지 현재 내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성화의 삶을 살고 있으면 장로교 식으로 설명하든 감리교 식으로 설명하든 그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인 것이다. 적어도 현재는 그렇게 믿어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순종의 상태가 중요한 것이다. 현재 내가 매일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면 그것으로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이미 다 해 주셨다. 우리가 할 일만 남았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성화의 삶을 열심히 살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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