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삼열 목사의 목양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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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17-18절에 보면 우리가 율법의 일점일획까지 소홀히 여기지 말고 모두 지켜야 한다는 의미의 말씀이 나온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여기에 일점일획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이 정확히 무슨 뜻일까? 구약의 율법을 빼먹지 말고 다 지켜야 한다는 뜻일까? 예를 들어 유대인들이 코셔 음식만을 먹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큰 불편을 감수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구약의 음식법을 철저히 지켜야 하고, 안식일 법을 완벽히 지키기 위해 금요일 저녁 해질 때부터 그 다음날 해질 때가지 모든 종류의 일을 금하고 그런 규정의 일환으로 예배당까지 걸어가서 예배를 드리고, 또 할례를 행하고 부림이나 숙곳 같은 절기들을 지켜야 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 일점일획이란 것이 성경의 글자 하나하나를 완전한 하나님의 뜻을 담은 신탁으로 떠받들어 성경을 문자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말일까? 예를 들어 출애굽기 21:23절 이하에 보면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갚을지니라.” 라고 했는데, 이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받아들이지 않고 글자 그대로 가해진 해에 상응하는 복수를 하거나 보상을 요구해야 한다는 말일까? 또 레위기 25:37절에 보면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 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 주지 말라.”고 했는데, 정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현대에도 절대 이자를 취급하는 은행 같은 곳에서는 일하면 안 되는 것일까?


한편 어떤 사람들은 이 일점일획의 원칙을 흠정역 성경(King James Version)과 연결시킨다. 다른 성경들은 본래의 말씀을 현대적 사상들로 가감했기 때문에 다 오염된 것이고 오직 흠정역 성경만이 일점일획의 가감도 없는 완벽한 순순한 성경이라고 주장하는데, 과연 마태복음 5:18절의 일점일획이란 것이 그런 뜻일까? “일점일획이 정확히 무슨 뜻일까?

 

일점일획이란 표현을 문자적으로읽으면, 하나님의 말씀은 한 점 한 획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작은 부분까지도 하나님의 영감을 담고 있어서 반드시 성취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한 단어 한 토씨까지 소홀히 여기지 말고 모든 것을 완벽히 이해하고 완벽히 따라야 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하면 일점일획이란 표현은 어디까지나 성경의 외형적 형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 의미를 말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왜냐하면 결국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는 것은 어느 특정 문자의 형태가 아니라, 즉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원문이 정확히 어떻게 되어 있느냐가 아니라, 그 문자가 담고 있는 성령의 의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들은 이 일점일획을 히브리어의 모음부호로 이해한다. 왜냐하면 일점일획이라는 표현 자체가 당장 그것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어를 조금 공부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히브리어 문법에서는 점이 몇 개냐에 따라, 또 점과 작은 획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모음의 음가가 달라진다. 그리고 모음의 음가가 달라지면 자연히 단어의 의미도 달라지게 된다. 그러나 히브리어를 조금 더 많이 공부한 사람은 이 일점일획이 그런 뜻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모음부호는 (점과 획은) 원래 히브리어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중세시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옛날에도 히브리어에 모음 음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누구도 모음 없이 자음만 가지고 히브리어 혹은 다른 어떤 언어를 발음할 수는 없다. 단지 글로 쓸 때 대다수의 언어들은 자음과 모음을 함께 사용지만 히브리어는 자음만 연결하여 사용하는 방식을 취하였고, 히브리어를 읽는 방법을 배운 사람은 그렇게 자음들만 연결해 놓은 글을 각자가 알아서 모음을 붙여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중세시대에는 히브리어를 읽기 편하게 하기 위해 히브리 학자들이 점과 획으로 된 모음 체계를 만들어서 그것을 자음 밑에 붙여 놓았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볼 때 일점일획은 히브리어의 모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율법의 일점일획이 히브리어의 모음부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다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 표현이 성경말씀의 세세한 부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5:18절에서 일점일획이란 표현에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를 생각해보면 이 사실이 명확해진다. 그리스어 원문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 하나의 이오타(iota), 하나의 케라이아(keraia)”로 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구약 즉 히브리어 성경을 말한다. 그렇다면 그리스어의 가장 작은 단어인 이오타(i)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글자는 요오드, 즉 숨표 비슷한 모양의 글자이고, 그래서 일점”(하나의 이오타)까지 지켜야 한다는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 중 가장 작게 보이는 것을 무시하지 말고 그것까지도 신경써서 다 지켜야 한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일획”(하나의 케라이아)은 글자의 끝까지 자세히 보고 해석하라는 의미가 된다. 왜냐하면 케라이아라는 단어는 작은 뿔즉 글자의 끝부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어에는 끝에 꼬부라지는 부분만 다르지 대충 보면 비슷한 글자들이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일획까지도 신경써서 지키라는 말은 곧 하나님의 계명을 대충 읽고 넘어가지 말고 마지막 부분까지 자세히 읽고 이해하여 지키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 일점일획의 원칙이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 마음에 부담이 된다고 특정 말씀을 빼먹고 넘어가든지, 아니면 성경에도 없는 내용을 자기 마음대로 집어넣어서 성경말씀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잘못 이용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2:18-19절이 바로 그것을 경고하고 있다.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한편 어떤 사람들은 이 일점일획의 원칙을 1611년에 발행된 흠정역 영어성경(King James Version)에 연결시킨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까지 중요하기 때문에 절대 더하거나 빼거나 하면 안 되는데, 오직 흠정역만이 그렇게 가감없이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나머지 성경들은 다 원본을 수정한 잘못된 성경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그렇지 않다. 더 정확한 성경의 사본이 발견되었는데도 불완전한 후대의 사본에 기초한 흠정역을 마치 하나님이 주신 성경으로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잘못인 것이다.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흠정역 성경을 직접 주셨을까?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 원본은 아쉽게도 우리에게 남아있지 않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원래의 성경을 몇 대에 걸쳐 여러 번 베껴 쓴 5500여개의 사본들뿐이다. 그리고 흠정역 성경이 사용한 그리스어 성경은(Textus Receptus, 1623) 그 많은 사본들 중 일부를 기초로 해서 정리편집한 하나의 판본일 뿐이다.


따라서 만일 이전에는 5세기에 기록된 사본이 가장 오래된 사본이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사용했다면, 그러나 지금은 2-3세기에 기록된 더 정확하고 더 원본에 가까운 사본이 새로 발견되었다면, 우리는 그 새로 발견된 사본에 기초하여 더 정확한 번역을 하는 것이 맞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경의 원본에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사본이 발견될 때마다 성경의 일부가 바뀌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성경의 원본이 없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 현재까지 우리에게 있는 사본보다 더 오래되고 저 정확한 사본이 발견될 때는 당연히 그것에 맞추어서 성경을 개정해야 한다는데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 사실 이렇게 새로운 사본이 발견될 때 성경의 의미가 바뀌는 예는 극히 드물다. 누구나 성경을 베끼는 사람은 정말 최고의 경외의 마음으로 베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통 정통 교회에서 인정하는 성경들은 어느 것이나 믿고 사용해도 안전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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