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삼열 목사의 목양칼럼
사진앨범 :: 아름다운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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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을 읽을 때면 좀 마음이 불편하신 분들이 있다. 신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고 예수님도 여자나 불구자를 포함한 약자들의 권익을 보호해 주는 정말 선한 분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구약성경에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의 하나님이 나오는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정말 하나님 같지도 않은, 매정하고도 잔인한 폭군 같아 보인다. 전쟁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전쟁을 할 때면 죄 없는 어린아이들과 동물들까지 진멸하라고 하고, 제사를 드릴 때마다 매번 죄 없는 동물을 잡아서 피를 흘려서 죽이라고 하고, 성전에서 일을 하도록 특별히 정해진 레위인들 중에서도 불구자는 제사장이 될 수 없고 성전에도 들어갈 수 없도록 명령하는 비호감의 하나님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면 구약성경은 꺼리고, 교회에서도 설교자가 구약을 본문으로 하여 설교를 하면 별로 마음에 안 들고, 심지어는 왜 우리가 읽는 성경에 구약이 들어가 있어야 하냐고 근본적인 차원의 의문을 제기하기까지 한다.

 

초대교회 시절에 이미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 마르시온이란 이단자가 있었는데 그는 정통교회와는 다른 독자적인 교회를 세우고 자신의 독특한 이단사상을 전파하였다. 마르시온은 구약과 신약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라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구약은 율법이고 신약은 복음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가짜 하나님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이다. 구약의 하나님이 만든 세계는 악한 물질세계이지만 신약의 하나님이 속한 세계는 선한 영의 세계이다. 마르시온은 이렇게 구약과 신약을 대립적으로 보기 때문에 기독교 성경에서 구약을 제거해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신약성경 안에 이미 수많은 구약의 인용구들이 들어가 있는데 (그는 이단들이 이걸 신약에 몰래 삽입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이것을 식별해서 제거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것을 싹 제거하고 자기만의 성경을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정통교회는 성경을 확정할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마르시온이 이런 식으로 자기 맘대로 성경을 만드는 바람에 급히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기독교의 공식 성경, 즉 구약을 포함한 성경을 확정하였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창세기에서부터 말라기까지의 부분을 지칭할 때 구약이 아닌 히브리성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성서에 대해 구약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 왜냐하면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인들이 유대교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맘대로 성경을 가져가서 사용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것을 구약(舊約)이라고 부르는 데 있는 것이다. 즉 구약이란 표현 자체가 신약(新約)의 우월성 혹은 절대성까지 전제로 하는 말인 것이다. 마치 유대인의 옛 약속이 어떤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새 약속 안에 편입되어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구약을 기독교 경전의 일부로 사용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신약과 마찬가지로 구약도 우리를 향한 동일한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신약이 예수님 이후에 태어난 새 시대의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라면 구약은 예수님 이전의 옛 시대 사람들을 위한 동일한 하나님의 약속인 것이다. 좀 도식적인 표현을 사용하자면, 구약은 예수님을 예언/준비한 책이고 신약은 그 예언/준비의 성취를 기록한 책이다. 신약은 고차원의 학문인 복음이 담긴 책이고 구약은 그런 고등학문을 배우기 전에 먼저 배워야 하는 초등학문과 같은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어떻게 구약의 하나님이, 즉 이방민족과 전쟁을 할 때 사람들은 물론이고 동물까지 진멸하라고 하신 구약의 하나님이 사실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신 신약의 하나님과 똑같은 분이 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구약의 율법은 신앙의 초보단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초등학문인 것이다. 하나님은 당시 수준을 고려하여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윤리수준만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초등학문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그들이 그 수준에 영원히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고등학문인 신약의 복음의 수준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초대교회는 신약만으로 구성된 반쪽 성경이 아닌 구약을 포함한 온전한 성경을 확정함으로써, 기독교 안에서 옛 약속과 새 약속이 예수님의 복음을 중심으로 하나로 연결되도록 결정한 것이다.

 

우리는 구약을 읽을 때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읽으면 구약이 왜 기독교 성경책에 들어와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구약을 단순히 이스라엘의 역사로 생각한다. 사실 구약을 읽어보면 그 민족에게만 고유한 역사가 많이 발견된다. 한국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남의 나라 역사를 깊게 연구할 필요까지는 없고, 그럴 시간 있으면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느껴질 수 있다.

 

한편 다른 사람들은 성경을 문학책으로 읽는다. 성경은 서양문명의 기본 텍스트를 제공하기 때문에 문명을 연구하거나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성경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특히 중세문학에는 성경의 인물과 사건이 배경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경에 대한 기본지식 없이는 중세문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문학도는 기본 텍스트로서 성경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구약과 신약이 함께 한 책으로 엮어져 있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신약은 기독교 문학으로, 구약은 히브리 문학으로 따로 읽어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기독교인들은 구약을 어떻게 보는가? 기독교인들은 구약성경을 역사책으로도 보지 않고 문학책으로도 보지 않고 구원의 진리가 담긴 책, 변함없는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책으로 본다. 물론 구약에는 신약 같이 구원의 진리가 명확히 기록된 것은 아니지만, 역시 구약시대의 사람들의 수준에 맞는 정도의 진리가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

 

예수님과 사도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구원의 진리를 가르칠 때면 구약을 많이 인용하였다. 사실 구약성경은 당시에 예수님과 사도들이 인용했던 유일한 성경이었다. (아직 신약성경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이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과 사도들도 인정했던 성경을 우리가 뭐라고 기독교 성경에서 빼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과 사도들이 소홀히 하지 않았던 성경을 우리가 소홀히 해서야 되겠는가? 신약과 마찬가지로 구약에도 동일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구원의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에 기독교 성경에 그 둘이 함께 들어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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