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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선교얘기 - "또다른 이태석 신부" 김중호의사 얘기 Publish on May 07,2012 | 손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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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손동원
댓글 1건 조회 8,011회 작성일 12-05-07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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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울지마  톤즈  의  이태석  신부" 라  불러지는   김중호  신부님의  아름다운  얘기를   소개해  드립니다.   김중호  신부님은  경기고  54  회출신 ( 1958년  졸업)  으로  서울  대학교  의과대학  과  캐토릭  신학교를  거쳐   의사로써  신부가되어,  세계  빈민촌에서  수만명의  환자들을  진료  하신분인데,  참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본보기로  저에겐  느껴지기에  여기  소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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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세계 빈민 찾아 의료봉사 ‘또다른 이태석’ 김중호 신부<?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 72세의 노()신부는 느린 손놀림으로 한참 동안 사제복을 가다듬었다. 마침내 손녀뻘 되는 여기자와 마주 앉은 그는 숨을 골랐다. 그리고 말문을 열었다. 

“그래, 내가 우울증에 걸린 이유가 궁금하다고요. 하긴 하느님을 모시는 신부가 우울증에 걸렸다니 이상하게 들릴 만도 하죠.” 그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나는 평생 돈 때문에 스트레스를 참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우울증에 걸린 거래요. 

김중호 신부(사진)는 그렇게 그동안 꺼내지 않았던 인생 이야기를 시작했다. 

○ 서울대 의대생, 사제의 길을 택하다


일흔을 앞둔 2008년 어느 날. 갑자기 밥 한술 넘기는 게 힘에 부쳤다. 밤에는 누워도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서울성모병원 사제관에서 사람과 마주치는 게 싫어 막내 여동생 집으로 도망가다시피 하길 수차례.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 있다 돌아오는 날이 늘었다. 식구도 없이 평생 성직자로 살아온 오빠가 걱정됐던 여동생 김남희 씨(62)는 병원에 가보자고 졸랐다. 

“나는 신부다. 이 모든 고통도 하느님의 뜻일 게다.” 동생에게는 이렇게 말했지만 의학박사 출신인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증세가 의학전공 서적에서 봤던 전형적인 우울증이라는 것을.

병은 쉽사리 낫질 않았다. 2년 만에 자존심을 버리고 서울의 한 정신과 상담실을 찾았다. 몇 차례 이어진 상담 끝에 의사는 그가 아픈 이유를 진단했다. “평생 너무 과로하셨네요. 돈을 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심하시고요.

사실 그는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알아주던 부잣집 둘째아들이었다. 아버지는 고려대 의대 교수이자 잘나가던 외과 의사였다. 작은아버지들도 모두 의사였다. 할아버지는 집안 의사들을 모아 종합병원을 차리는 소원이었다. 미리 병원 용지로 1653m²( 500) 땅을 사두기까지 했다. 가업을 잇기 위해 김명호 씨와 그는 서울대 의대에, 셋째 부호 씨는 고려대 의대에 진학했다. 의사 아버지와 의대생 삼형제는 매일 오후 10시면 부엌 식탁에 둘러앉아 밤참을 먹었다. 새벽녘까지 병원과 학교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아버지는 아들들과 함께 가족병원을 차리는 꿈을 꾸고 있었다. 아버지의 꿈이 깨진 그가 본과 2 과정을 마치던 1962 겨울이었다. 함께 밤참을 먹던 식탁에서 그는 돌연 의대 자퇴를 선언했다. “ 의대 그만두겠습니다. 신부가 돼야겠어요.”

초등학교 시절 그는 매일 오전 6시면 눈을 떴다. 학교에 가기 매일 동네 성당에 들러 그날 아침미사에 포도주와 성경을 준비했다. 어린아이가 복사(服事) 일을 기특하게 잘해낸다는 칭찬을 들었다. 

남과 나누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다섯 남매에게 똑같이 나눠준 간식을 책상서랍 속에 숨겨뒀다가 다음 형편이 어려운 친구를 집에 데려와 먹이곤 했다. 동생들은 가난한 애들하고만 논다고 놀렸다.

사제복 입은 서울대출신 의사

콜롬비아 칼다스 지역에서 환자를 진찰하고 있는 김중호 신부. 그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콜롬비아 환자 1798명을 진료했다.

이경재 신부는 그런 그를 눈여겨봤다. 신부는 없는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경기 의왕시 오전동에 만들어진 라자로 마을 초대원장을 지낸 분이다. 그에겐 인생의 멘토였다. 의대 진학을 앞두고 공부에 매진하던 경기고  재학 시절  신부는 넌지시 말했다. “ 집안에 육체를 고치는 의사는 많으니 너는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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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선영님의 댓글

송 선영 작성일

<p>김중호 신부를 소개 하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동되는 이야기 들입니다.  가난하고 불쌍한 35,000 명의 무료 치려를 해주신 의사 신부의 삶은 정말 감동 됩니다.  아름다운 실천의 삶 입니다.  우울증 이라해도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안타까움,&nbsp; 재정적인 Stress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다는것은 참 아름답고, 우리가 배울만한 이야기 입니다. 긍휼하신 하나님이 김 증호 신부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그 필요함을 채워주시고 그 우울병에서 부터 치유하여 주시기를 기도 합니다. 낙도섬에 전도하기 위해 힘쓰는 반 봉혁 장로님의 노력이 생각 납니다.</p>